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103 전차 (문단 편집) === T43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7일, [[베를린]]에서 열린 [[소련]]의 전승기념 퍼레이드에 나타난 [[IS-3]] 중전차는 완전히 새로운 외형으로 서방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IS-3를 매우 위협적으로 본 미국은 훗날 있을 지 모르는 소련과의 전쟁에서 일어날 소련의 전차 돌격 작전에 대비할 필요를 느꼈고, 이에 다시 새로운 중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1945년 1월부터 [[미군]]은 전후 전차 정비계획을 세우면서 사전 연구에 착수했고 1945년 6월에 사전 연구 결과에 따라서 경(輕)/중(中)/중(重) 3체급의 신형전차 개발 계획을 시작하였다. [[T29]]나 [[T30]], [[T34]]같이 제2차 세계 대전기에 개발되어 시험된 중전차들은 무게와 성능 등의 문제로 그대로 실전배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미국 육군과 [[미 해병대|해병대]]가 신형 중전차 개발을 지원하면서 1945년부터 M103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다만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군축과 개발 예산 관련 문제로 사실상 실제 개발은 1948년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육군의 경우 신형 중전차 개발을 찬성하는 세력만큼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T43이라고 명명된 신형 중전차의 개발은 미 해병대의 지원 덕분에 가능해졌다. T43 전차는 적 전차와의 교전뿐만 아니라 장거리 화력 지원도 상정하고 설계되었으며, 기존에 나온 [[T34]]보다 기동력, 방어력, 범용성 등의 면에서 더 우월한 성능을 발휘하게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미국 육군도 관심을 많이 가졌지만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서 육군 내 반대파의 주장이 커지면서 사실상 육군은 T43 중전차에 관심을 잃었다. 반면 미 해병대는 상륙 작전 교리에 맞게 T43을 쓸 계획이라서 프로젝트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해병대가 특히 상륙 교리를 위한 중전차를 지지한데는 [[펠렐리우 전투]] 당시 [[일본군]]의 기습에 의해 투입된 [[M4 셔먼]]과 [[스튜어트 전차]]에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펠렐리우 전투 당시 제1 전차 대대의 지휘관이던 아서 J. 스튜어트 중령과 전투중 지상 사령관인 올리버 P. 스미스 소장은 일본군의 반격과 보전합동술을 목격하였고, 이때부터 이들을 시작으로 신형 중전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후 해병대 준장이자 사령관으로 진급한 올리버 스미스는 1946년 3월 22일에 해병대 사령관 알렉산더 A. 반데그라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당시의 미군 전차들은 느리고 대전차 화기에 취약하기에 미래에 개발될 신형 전차는 공격력과 방어력, 기동력이 모두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고[* 원문: ‘’In general, the tanks with which the Marine Divisions ended the war are now definitely obsolete. The tank for the future must be capable of withstanding greater punishment, be more mobile, and have improved hitting power. The present tanks are too slow and too vulnerable to anti-tank weapons.’’],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을 상태로 전투를 한 스튜어트 중령의 경험을 기초로 결론을 맺었다[* ‘’Had the Japanese possessed modern tanks instead of tankettes and had they attacked in greater numbers the situation would have been critical.’’].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반데그라프 장군은 일단 육군과 해병대가 쓸 수 있는 더 강력한 신형 전차가 배치될 때까지 [[M26 퍼싱]]을 구매하여 배치하였다. 미 해병대가 2차 대전까지는 일본군을 상대했지만, 냉전기부터는 더 강하게 무장한 [[소련군]]을 상대해야 했기에 중전차도 더 필요해지면서 중전차의 개발은 이어졌다. 1945년 6월에 처음 제시된 요구 사항은 5명의 승무원, 7도 경사에서 시속 20마일(32km/h)의 최대 속도, 전차 높이와 동일한 도하 능력 , 구경이 90mm 이하이면서 2,000야드(1,830m)의 거리에서 30도 수직 경사의 10인치(254mm) 경사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주포, 특수 탄약으로 4,000야드(3, 660m) 사거리에서 분산도 0.3 밀리인치(100야드당 1.08인치 또는 100m당 3cm)의 정확한 사격 성능을 내고, 차체와 포탑 전면은 10.5인치(267mm)의 유효 장갑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동시기에 미군에서 또 다른 선행 연구가 완료되어 신형 중전차와 함께 신형 경전차와 중형전차의 도입이 주장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신형 경전차와 중형전차는 각각 T41 경전차, [[T42]] 중형전차라는 이름으로 개발에 들어가고 신형 중전차는 T43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T41은 [[M41 워커 불독]]으로 완성되었고, T42는 [[M47 패튼]]의 포탑을 제공하였다. 참고로 T43보다 더 무거운 150톤급 [[초중전차]]까지도 고려되었지만 이건 계획만 되다가 취소되었다. M103 전차의 주포는 [[120mm M1 대공포]]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고, 이미 2차 대전 중에 개발한 120mm 시제기 [[T34]]의 개발 데이터를 많이 채용했다[* T34의 경우에도 주포로 [[120mm M1 대공포]]를 기반으로 만든 T53 전차포가 쓰였다.]. 엔진과 변속기도 T34처럼 [[콘티넨탈 AV1790]]과 CD-850 계열을 사용했다. T34는 무게가 지나쳤기 때문에 그대로 차체 설계를 사용할 수 없어서 1948년에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제안된 것처럼 T34를 기반으로 차체 크기를 줄이고, 경사장갑을 대폭 활용하고, T53 주포도 약간 경량화하는게 결정되었다. 이렇게 T34의 2,032mm 직경 포탑 링은 유지하되 차체 길이를 줄이면서 보기륜도 1쌍 줄이고, 보조 조종수를 없애고 탄약수도 1명으로 줄여서 승무원을 총 4명만 태우게 하는 설계가 되었다[* 다만 장전 속도 문제로 나중에 다시 탄약수가 2명으로 늘어나면서 이후 총 승무원은 5명이 되었다.]. 이렇게 확정된 T43의 초기 설계는 1948년 12월에 적합하다고 판정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T43의 무장으로는 T34의 120mm T53 주포를 기반으로 부분 재설계한 T122와 T123이 고려되었다. 두 포 모두 원본과 동일하게 분리 [[장약]]식 포탄을 사용하고, 구경장과 포신 규격도 원본과 동일하지만 모두 원본보다 경량화되었다. T122는 T53보다 492kg 정도 가벼운 2,867kg 나갔고, T123은 냉간가공 공법으로 제조되어 T122보다도 더 가벼우면서 더 높은 내구성과 약실 압력을 확보하였다. T123은 강화된 성능과 약실 압력 덕분에 더 강한 장약을 사용하여 관통력을 높일 수 있었고, 이후 테스트에서 실패한 T122와 달리 5인치(127mm) 두께의 55도 경사장갑을[* 이는 당시 미국에서 예상한 [[IS-3]]의 전면 장갑 수치다.] 관통하는 것을 성공하였다. 개발 당시에는 신형 120mm 주포를 위한 HVAP([[경심철갑탄]])와 HVAPDS(경심[[분리철갑탄]])을 만드는 게 고려되었지만, [[텅스텐]] 관통자의 가격과 신형 포탄이 포신의 강선을 더 빠르게 손상시킨다는 단점 때문에 기각되었다. 그리고 T123은 기존 화포보다 약실 압력이 높아진 덕에 통상적인 풀캘리버 APC를 써도 충분한 관통력을 낼 수 있었기에 더 경제적이라고 평가받았고[* 통상탄을 쓰면 T122보다 관통력이 강력했고, T122에서 특수탄인 HVAP를 쓰는 것 대신에 T123에서 통상적인 APC를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이후 T122는 T123이 완성될 때까지 임시 방편으로 사용될 계획이었다. 이 외에도 T153 120mm 대전차고폭탄도 개발되어 개발 초기에는 330mm의 관통력을 냈지만 나중에는 381mm까지 관통력이 향상되었으며, [[철갑탄]]보다 탄속이 더 빨랐기 때문에 정확도가 더 좋을 것으로 여겨졌다. T43의 주포로 채택된 T123은 처음에는 T122와 마찬가지로 T140 건 마운트에 장착되었지만,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재설계한 T154 마운트로 건 마운트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건 마운트를 받은 T123 포의 제식명도 T123E1으로 바뀌었다. T123E1은 T123보다 빠르게 포신을 교체할 수 있도록 재설계 되었다. 이후 T123계열 주포의 개발이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면서 T53과 T122는 1952년 상반기에 개발이 취소되었다고 한며, T153이 중전차의 양산형 모델들에 장비될 주포로 채택되었다. 한편 무장이 개발되던 중에 차체와 포탑의 외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엔지니어 조셉 윌리엄즈의 제안대로 차체가 곡면을 활용하여 둥글게 설계되었고, 곡면 설계의 도입 덕분에 실제 장갑 두께를 조금 줄이면서도 유효 방어력을 대폭 키워서 경량화와 동시에 요구된 방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곡면형으로 새롭게 설계된 설계안은 T43의 외형을 초안에서 크게 바꿨고, 1949년 10월부터 12월까지 디트로이트 아스널에서 연구되었다. 설계 변경으로 인해 외형 뿐만 아니라 포탑링 지름도 T34와 동일한 80인치(2,032mm)에서 85인치(2,159mm)로 키웠고, 동시에 포탑도 대형화하여 다시 두번째 탄약수가 타면서 총 승무원이 5명으로 늘어났다. 무게도 처음에 예상된 58톤에서 55톤으로 줄었고, 포수의 거리 측정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포탑에 페리스코프가 추가되었다. 이외에도 포미 작동시 장전수의 안전을 위한 전자식 안전장치, 새로운 동심식 제퇴기, 전차장을 위한 [[헌터킬러]] 기능, APU 엔진, 추가 조준기 등이 생겼다. 반면 .30구경 [[RWS|원격 제어 기관총]], 포수용 직접 망원 조준경, 파노라믹 조준경, 제어 컴퓨터 등이 제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50년 4월 24일에 발표되어 동년 6월 28일에 육군 사령부가 승인했다. 이 외에도 T43을 위한 T18 도저 블레이드 T15 부교 같은 장비들도 1950년 여름부터 제작되기 시작했다. M103과 동시기에 영국이 개발한 [[FV214 컨커러]]에도 T34의 데이터와 [[120mm M1 대공포]] 기반으로 설계된 120mm L1 전차포가 적용되어 사실상 영미가 개발한 중전차는 거의 동일한 주포를 사용하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AMX-50]]에 올리려고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를 결합한 120mm SA46 주포를 개발하기도 했지만, 포 자체는 미국과 영국제 120mm와 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